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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암] 영산 배정능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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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등록날짜
    • 2021-04-06 09:40:44 / 조회수 : 103
    • ↑원기103년(2017) 4월 28일 법호수여식↑

      영산 배정능 교정은 19571031일 경북 대구 에서

      부친 배상록 님과 모친 이현덕 님의 34녀 중 막내로 출생하셨습니다.

      평소 성실하고 정직하며, 온순한 성품을 가진 영가는

      19848월 박남숙님과 혼인하여서는 슬하에 배기윤 배소연 11녀를 두시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부모님을 잘 모시고, 형제들간에 우애가 깊으셨으며

      가정에도 책임을 다 하셨습니다.

       

      사회적으로

      경북고, 한양대 전자과, 카이스트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으로 근무하시며, 한국 반도체 설계 전문가로서

      국가사회에 일익을 담당하셨습니다.

       

      원기 51년 어머니 이현덕님의 연원으로 원불교 정법회상에 입교하여

      원기 85년부터 대구교당 학생회 활동, 제기교당 청년회 회장, 유성교당, 화정교당에서 신앙수행에 정진하셨고,

      작년 원기 103년 길 영 이라는 법호를 수증하셨습니다.

      교당에서는 늘 먼저 와서, 회보를 나눠주며 교도님들을 맞이하시던 교화자셨고,

      대정진 대적공 하리라는 공부표준으로 살아오셨으나,

      평소 지병으로 고생하시다가, 지난 85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열반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원불교 법랍 52, 공부성적 정식법마상전급, 사업성적 준3

       

      [원기95년(2010) 6월 20일] 원불교를 만나서 강연 원고]

      저는 19571031일 안동에서 태어나 6살 때 대구에 정착 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이수 후 19823월 연구소에 입소하여 구미에서 3, 대전에서 15년을 산 후 서울로 진출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기 70년에 법호를 받으시고 76년에 법사가 되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4년에 원불교에 처음 나가게 되었습니다. 유년회를 거친 후 중학교 3년은 대구교당에 학생회가 없는 관계로 쉬었으며 고등학교에 입학 하여 고등학교 학생회에 3년을 다녔습니다. 대학교 때는 처음 한 학기를 종로교당에 다니다가 2학기가 되면서 대구교당 학생회 출신들이 모여 있는 제기교당에서 19822월 석사과정 졸업 후 대구교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84826일 결혼 후 85년 구미로 이사를 가면서 교당 출입이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863월 다시 연구소 통. 폐합에 의해 거처를 대전으로 옮기면서 교당 출입은 거의 없었습니다. 1993년 연구단지내에 건축되어진 한빛아파트로 이사를 한 후 95or 96년에 유성교당에 나가게 되었는데 3,4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내에게 단장을 맡으라는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아내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 때부터 다시 휴식기간에 들어갔습니다. 972, 3개월 정도 더 다녔는데 유년회 문제로 인해 다시 휴식기간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2002년 일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제기교당 청년회 후배가 다니는 화정교당으로 나가게 되었다. 2009(원기 94) 11월 서울 회기동으로 이사를 한 후 지금의 안암교당에 나오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사실 학생회와 청년회 때는 원불교 교법에 대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화정교당에 다니면서 정전과 대종경을 읽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법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하여 아직도 남들이 물으면 보통급에 속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안암교당에 오면서 사경을 시작하여 조금씩 법공부에 흥미를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정전에서 무시선 무처선 이며 대종경 중에서는 요훈품 1장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 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

      그리고 최고로 기억에 많이 남는 사건은 4월 중순에 일어났다. 대전에서 일을 보고 서울로 귀가 중 중부고속도로에서였다. 잠시 졸다가 정신을 차리니 차가 가드레일을 덮칠 것 같아 즉시 핸들을 좌측으로 조금 꺽으며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아뿔사 중앙분리대를 받고 차가 180도 회전하는 사고가 있었다. 견적이 865만원이나 나왔지만 다행히 내 몸은 아무른 외상도 없이 다치지 않은 것이다. 그 때 저의 상의 주머니에는 아내가 준 네잎 클로버가 있었으며 처음 안암교당에 나갔을 때 교무님이 주신 염주가 왼쪽 팔에 끼어 있었다. 골똘히 생각해 봤더니 이렇게 몸이 무사한 것이 모두 법신불 사은님께서 절 보호해 주신 게 아니가 생각되었다.

      현재 아버님의 차례를 큰 형님 댁에서 원불교 식으로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 어떻게 될까 몹시 걱정이 된다. 그 이유는 큰 형님은 학생회를 제외하고는 교당에 나가지 않고 들리는 얘기로는 큰 형수님은 천주교에 흥미가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당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은형님도 큰형님과 같은 길을 지나가고 있으며 작은 형수님은 불교에 심취하여 매번 절에 다니고 계신다. 원불교에 남은 것은 막내아들인 저밖에 없는 현실이다. 어머니도 사후의 제사가 걱정이 많으시다.

      그리고 또 우리 집에도 문제점이 있다. 저 혼자만 교당에 다니며 법 공부를 하고 아내와 얘들이 모두 교당을 멀리 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아내는 가끔 나와의 대화에서 어머님 사후에 제사를 원불교 식으로 지내고 여유가 있으면 전무출신의 뒷바라지를 하고 싶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도 나랑 같이 안암교당에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얼마 전 아내에게 교당 가자고 했더니 싫다고 한다. 아직 나의 정성이 부족한 모양이다.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해보면, 첫 번째가 일원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아내, 아들, 딸을 다시 원불교에 귀의케 하는 것이다. 둘째는 어머니 사후에 부모님의 제사를 원불교 식으로 하는 것이고, 셋째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내 말대로 전무출신의 뒷바라지를 해 주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이루어지길 법신불 사은전에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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